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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에세이] 빈차

킹스골프 2025. 12. 9. 23:10

저녁 늦은 퇴근길.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집쪽으로 걸어간다. 막 건너온 횡단보도 옆 도로에는 러시 아워가 한참 지나 이따금 달리는 차가 한두 대씩만 지나 다니고 있다. 그런데 이 시간대면 항상 눈에 띄는 반가운 차가 오늘도 지나가며 보인다. 안내등에 빨간색 형광 글자로 빈차라고 써있는 택시. 나는 저녁 늦은 시간 이 차만 보면 마음이 흐뭇해진다.

빈차. 저 차는 내가 타겠다 손 흔들어 신호하면 깜빡이를 켜고 내 옆으로 와준다. 그 차는 나를 싣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충실히 움직여 나를 데려가 준다. 요즘은 택시 앱으로 예약하고 호출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초록색 형광 글자로 예약이라고 써 있는 택시들을 많이 본다. 편리하자고 만든 시스템인줄 알지만 가입 절차와 사용 방법 등에 새로 접근하기 귀차니즘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. 그렇게 예약이라고 표시된 차를 보고 느끼는 것은 저 차에는 내가 들어갈 수가 없다라는 것. 그리고 그 글자가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관심에서 멀어져 다시 쳐다 보지 않고 떠나 보내 버린다는 것이다.

추운 겨울. 추위에 한참을 떨어 몸이 얼 것 같은 날씨에, 빈차는 나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데워준다. 비어 있다는 것은 안도감을 준다. 억지로 꽉꽉 채우다 보면 어딘가 탈이 생긴다. 쓸데없는 생각을 비우고 욕심도 비우고 부질없는 걱정거리 마저 다 비우면 마음에는 슬며시 편안함이 자리잡는다. 계속되는 쫓기는 삶에 귀갓길에서 택시 빈차를 보고 편안함을 느끼는 건 하루를 잘 보낸 내 마음의 위로일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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